
복지를 받으러 주민센터에 갔다가 창구 직원에게 면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복지 현장에서 종종 듣는다.
“왜 이런 것도 모르냐”, “서류 제대로 챙겨오지”라는 말에 수급 신청을 포기하고 돌아선 사람도 있다. 돈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굶겠다고 결심한 노인의 이야기도 있다. 이것이 한국 복지 현장의 한 단면이다.
복지가 시혜라면 이런 일이 벌어져도 어쩔 수 없다. 베푸는 쪽이 갑이고 받는 쪽이 을이니까. 그런데 복지가 권리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은 면박을 받을 이유가 없다.
시혜로서의 복지가 가진 문제
시혜는 베푸는 사람의 선의에 의존한다.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다. 받는 사람은 감사해야 하고, 조건에 따라야 하고, 태도가 좋아야 한다. 시혜를 받는 사람은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복지를 시혜로 보는 사회에서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수급자에게 감사함을 요구한다. 복지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쓰는지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 수급자가 조금이라도 여유 있어 보이면 비난한다. “수급자가 무슨 스마트폰이냐”, “수급자가 무슨 여행이냐”는 시선이 그것이다.
이 시선의 근저에는 복지를 받는 사람은 최소한의 삶에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도움을 받으면서 인간적인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처벌에 가깝다.

권리로서의 복지는 무엇이 다른가
권리로서의 복지는 출발점이 다르다. 복지를 받는 것이 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자격이라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한국 헌법 제34조는 명확하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선언이 아니라 헌법적 권리다. 국가는 이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고, 시민은 이 권리를 청구할 자격이 있다. 복지를 신청하는 것은 도움을 구걸하는 행위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다.
권리로서의 복지에서는 수급자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감시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사도 되고, 가끔 외식을 해도 된다. 인간다운 삶에는 최소한의 문화적 즐거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복지 급여는 생존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존엄이 빠진 복지는 복지가 아니다
복지의 목적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존엄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실의 복지 전달 과정에서는 존엄이 자주 무시된다. 복잡한 서류 요구, 반복적인 자산 조사, 수급 사실의 불필요한 노출, 담당 공무원의 태도 — 이 모든 것이 수급자를 행정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사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케이스로 본다.
영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피어슨은 복지 전달 과정에서 수급자가 경험하는 굴욕감이 복지의 긍정적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돈을 받았지만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 경험은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 복지가 존엄을 빼앗는 방식으로 전달된다면, 그것은 절반짜리 복지다.

조건부 복지와 무조건적 복지
복지를 권리로 볼 것인가 시혜로 볼 것인가의 논쟁은 조건부 복지와 무조건적 복지의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조건부 복지는 수급자에게 특정 행동을 요구한다. 구직 활동을 해야 하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고, 자산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조건을 어기면 급여가 끊긴다. 이 방식은 복지 의존을 막고 자립을 촉진한다는 논리를 가진다.
그런데 조건부 복지가 가장 가혹하게 작용하는 대상은 그 조건을 이행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다. 중증 장애인, 만성 질환자, 돌봄 부담이 있는 사람에게 구직 활동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조건을 채우지 못해 급여가 끊기면 가장 취약한 사람이 가장 먼저 탈락한다.
무조건적 복지, 즉 어떤 조건도 없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방식은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최소한의 보장을 받을 자격이라는 생각이다.
복지를 권리로 만드는 것은 제도만이 아니다
복지를 권리로 전환하는 것은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복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수급자를 다른 시민과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 복지 창구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 이런 것들이 제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북유럽 국가들에서 복지 수급에 대한 낙인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법 때문만이 아니다. 복지를 모두의 권리로 보는 오랜 사회적 합의가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복지를 권리로 만드는 일은 아직 진행 중이다. 헌법에는 권리로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시혜의 감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간극을 줄이는 것이 한국 복지가 넘어야 할 다음 과제다.

복지를 시혜로 보는 사회에서 수급자는 감사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복지를 권리로 보는 사회에서 수급자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이 된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모든 것을 바꾼다. 제도의 설계가 바뀌고, 전달 방식이 바뀌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존엄을 지키는 복지가 진짜 복지다. 돈을 주면서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복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복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