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을 나오면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수십 년을 시설에서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들이 마주한 것은 빈 방 하나와 막막함이었다. 요리를 해본 적 없고, 대중교통을 혼자 타본 적 없고, 은행 업무를 처리해본 적 없다. 시설이 모든 것을 대신해줬기 때문이다. 자립은 선언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장애인 탈시설 논의가 본격화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약 3만 명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탈시설이란 무엇인가

탈시설이란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시설 문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국가 의무로 명시했다. 한국은 2008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비준 이후에도 시설 중심 정책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2021년 정부가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인 정책 방향은 잡혔지만, 실행 속도는 더디다.
시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탈시설 논의가 힘을 얻은 배경에는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가 있다. 강제 노동, 신체 구속, 폭행, 성폭력. 일부 시설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시설 자체의 구조적 문제가 공론화됐다.
물론 모든 시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폐쇄적인 구조 안에서 외부 감시가 제한된 환경은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드러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든다. 시설 거주 장애인은 문제를 외부에 알릴 수단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시설 거주 장애인의 상당수가 외출 제한, 휴대폰 사용 제한, 사생활 침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것이 탈시설이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탈시설 이후가 더 문제다
시설을 나온다고 끝이 아니다. 오히려 나온 이후가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 생활을 하려면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수다. 활동지원사가 일상생활을 도와야 혼자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활동지원 급여 시간은 대부분의 중증 장애인에게 턱없이 부족하다. 하루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월 100시간 남짓을 지원하는 것으로는 실질적인 자립이 불가능하다.
주거 문제도 있다.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전용 주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반 임대주택 시장에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집을 구하는 것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어렵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턱이 있는 출입구, 좁은 화장실. 물리적 환경 자체가 자립을 가로막는다.
지역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탈시설 정책의 성패는 지역사회의 수용 역량에 달려 있다. 주거, 의료, 활동지원, 사회적 관계망이 지역 안에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인프라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고,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탈시설에 반대하는 시각도 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시설이 오히려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논의는 단순히 찬반으로 나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설이냐 지역사회냐를 국가와 가족이 결정하는 구조가 문제의 본질이다.
자립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지원을 받으면서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것이다. 탈시설은 그 권리를 되찾는 과정이다. 시설 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온 이후의 삶을 지탱할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