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업 통계는 현실을 절반도 담지 못한다.
공식 실업률은 3% 내외를 유지한다. 주요국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숫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나온다.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단기 아르바이트로 버티는 사람, 취업 준비만 수년째 이어가는 사람. 이들은 공식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통계 밖의 실업이다.
체감 실업률로 불리는 고용보조지표 3번 기준으로 보면 실질적 실업 상태에 있는 인구는 공식 실업자의 세 배를 넘는다. 숫자가 보이지 않으면 정책도 없다.
장기 실업이 만들어지는 과정

장기 실업은 대부분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구조조정, 폐업, 계약 만료. 처음에는 곧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구직 활동이 수개월을 넘기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취업 공백이 길어질수록 이력서의 공백 기간이 늘어난다. 고용주는 공백 기간이 긴 지원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실력과 무관하게 장기 실업 자체가 취업의 장벽이 되는 구조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구직 활동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중장년층의 경우 이 악순환이 특히 빠르게 고착된다. 40~50대에 일자리를 잃으면 동종 업계 재취업이 어렵고, 눈높이를 낮춰도 나이를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험이 반복된다. 장기 실업이 사실상 조기 은퇴를 강제하는 경로가 된다.
고용보험, 누가 받고 누가 못 받나
실직 후 소득을 지원하는 핵심 제도는 고용보험이다. 실업급여는 퇴직 전 평균 임금의 60%를 최대 270일간 지급한다. 제도적으로는 실직자의 생활을 일정 기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크다.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초단시간 근로자는 고용보험 적용에서 제외되거나 적용이 불안정하다. 배달 라이더, 프리랜서,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이들은 일하다가 갑자기 일이 없어져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2021년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이 발표됐다. 단계적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행 속도는 더디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가 많다.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실업급여 이후, 아무것도 없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 다음 안전망은 기초생활수급 제도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 기준은 엄격하다. 재산과 부양의무자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수급자가 되면 구직 활동 의무가 부과된다.
실업급여와 기초생활수급 사이의 공백이 문제다. 실업급여 수급 요건은 충족하지 못하거나 수급 기간이 끝났는데, 기초생활수급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사이 어딘가에 떨어진다. 소득도 없고, 지원도 없는 상태다.
이 공백을 메우는 제도로 긴급복지지원이 있지만 한시적이고 조건이 까다롭다. 장기 실업자를 위한 중간 안전망이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일자리 사업의 한계

정부는 실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운영한다. 공공근로, 취업 성공 패키지, 국민취업지원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취업 지원 서비스와 구직 촉진 수당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사업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제공되는 일자리가 단기적이고 임금이 낮다. 공공근로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간 노동시장 진입은 오히려 어려워진다. 직업 훈련 프로그램의 질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꾸준히 제기된다. 훈련을 받았지만 정작 그 분야에 취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다.
실업 문제의 해법은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실업 기간 동안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안전망을 촘촘히 만드는 것이다. 일하고 싶은데 일할 수 없는 사람을 의지 없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제도도 바뀐다.
일자리를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 순간 혼자 버티게 두는 사회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받쳐주는 사회. 그 차이가 복지 국가의 수준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