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국에서 마음이 아프면 혼자 버티는 것이 기본값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최상위권. 우울증 유병률은 높아지는데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다.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의 상당수가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수년을 버틴다. 병원 문턱이 높고, 비용이 부담되고, 무엇보다 정신과에 간다는 사실 자체를 숨겨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한다.

아픈 몸은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 아픈 마음은 왜 다른가.


한국의 정신건강 현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약 27%다. 4명 중 1명 이상이 살면서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미국의 서비스 이용률이 4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다.

문제는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이 개인의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 내 문제, 가정 붕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정신건강 복지의 공백은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왜 정신과에 가지 않는가

정신과 기피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요인은 낙인이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보험 가입, 취업, 심지어 운전면허 취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실제로 일부 보험사는 정신과 치료 이력을 가입 심사에 반영한다.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정신과 기록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청년층의 진료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 낙인은 제도가 만들어낸 측면이 크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합리적으로 내린다. 개인의 편견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정신건강 인프라는 충분한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전국 각 시군구에 설치되어 있다. 무료로 상담과 사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도적으로는 접근 가능한 창구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센터 한 곳이 담당하는 인구 규모에 비해 전문 인력 수는 턱없이 적다. 대기 기간이 길고,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깊이에 한계가 있다. 위기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민간 정신과 의원은 비용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비급여 항목이 많고, 회당 진료비와 상담비를 합치면 부담이 작지 않다. 저소득층이나 청년층에게는 지속적인 치료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 장벽이 된다.


자살 예방, 숫자만 있고 구조는 없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 정부는 자살 예방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투입해왔다.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 같은 창구도 운영된다.

그러나 전화 연결이 안 되거나 대기 시간이 길다는 경험담이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위기 상황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 창구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예산이 홍보와 캠페인에 집중되고, 실제 위기 대응 인력과 인프라에는 충분히 투자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마음의 병도 병이다

정신건강 문제를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 남아 있다.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과 관련된 의학적 질환이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아직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인식을 바꾸는 것은 캠페인만으로 되지 않는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실질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제도를 고치고, 치료 비용 부담을 낮추고, 위기 대응 인프라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정신건강 복지의 출발점이다.

아픈 마음을 혼자 버티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